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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자

by 유익한 내용 2023. 12. 6.

독일의 프리미엄 자동차 및 오토바이 제조사 겸 구독 경제 서비스회사. 처음에는 비행기용 엔진을 만드는 회사로 출범

했으며 1923년에 첫 이륜차를 만들고 자동차를 처음 만든 것은 1929년이다. BMW 90주년 기념 모자를 보면 오토바이

사업부의 이름인 BMW 모토라드라고 되어있다.

역사

본사는 뮌헨에 있다. 정확히는 뮌헨 올림픽 공원 입구 근처에 있다. 본사 건물이 신축 공사 중일 때는 박물관을 올림픽

공원 내에 임시 설치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그 옆 약간 나지막하고 둥근 밥그릇처럼 생긴 건물에는 BMW 박물관이 있는

데 유로로 입장해야 한다. 참고로 BMW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오면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그 에스컬레이터

를 타고 올라가면 BMW 박물관과 비교해 매우 작은 롤스로이스 박물관이 있다. BMW 박물관을 관람했다면 무료다.

 

 

BMW의 역사는 1차 세계대전 중에 시작되었다. 뮌헨의 오베르비젠펠트 공항 근처에 자리하고 있던 구스타프 오토의 

바이에른 항공기 공업(Bayerische Flugzeug-Werke, 약칭 BFW, 1916년 설립)과 카를 라프의 라프 엔진 공업사

(Rapp Motorenwerke, 1913년 설립)는 서루 수백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1917년 BFW 공장은 하루에 약 200여대의 항공기를 생산 중이었는데, 공장이 큰 화재로 불타버려 가구나 생산하게

돼버렸고 라프 엔진 공업사는 몇 번의 사업실패를 겪고 있었지만 1917년 1월에 막스 프리츠가 합류했다. 막스 프리츠는

아주 중요한 인물인데, BMW 모토라드의 아버지와도 같다. 또한 성공적이었던 메르세데스-벤츠의 1914년 레이스카의

디자인에도 관여했던 인물이다. 이후 프라츠는 BMW의 첫 오토바이인 R32의 발매 후 BMW AG의 이사가 되었으며,

1925년부터 1937년까지 수석 디자이너도 맡았다. 1935년부터 1937년까지 뮌헨 공장을 책임지다 아이제나흐 공장

으로 넘어가 1944년까지 근무했으며 1945년 은퇴하였다. 1966년 타계.

 

내용

프리츠는 라프가 설계한 골칫덩어리 직렬 6기통 엔진을 손봤다. 덕분에 큰 계약을 따는 데 성공했고, BFW보다는 그나마

좋은 상황이었다. BMW Type llla 엔진은 BWM가 처음으로 계약을 따내 제작한 물건이다. 막스 프리츠의 카뷰레터

설계덕에 고고도 성능이 매우 뛰어났고 라프가 만들었던 오리지널 엔진의 진동 문제 역시 해결되었다.

막스 프리츠가 베를린 당국을 집요하게 설득한 끝에 1917년 말 성공적으로 테스트를 거쳐 독일 제국 군부로부터 2000대

의 계약을 받게 되었다. 생산된 엔진은 1차 세계대전 말기에 독일군의 전투기에 탑재되며 이 엔진이 탑재된 포커 D VII를

조종했던 에른스트 우뎃이 공중전에서 30번의 승리를 달성하는 등 연합군 항공기에 비해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줬지만,

그 등장이 너무나 늦었기에 큰 인상을 남기긴 어려웠다.

1917년 7월 25일 카를 라프가 건강악화로 사임하고 프란츠 요세프 포프가 화장자리를 채우면서 회사의 이름을 바이에른

원동기 공업사( Bayerische Motoren Werke), 줄여서 BMW로 바꾸게 된다. BMW라는 이름은 이때 시작되었다.

1918년 11월 11일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3주가 지나자 모든 비행기용 엔진의 생산이 중단되어 버렸지만 포프는 1919

년 2월에 공장을 다시 가동해 BMW llla 엔진의 개량형인 BMW IV 엔진의 추가 개발을 시작했다. 프란츠 제노 디머가 이

엔진을 사용해 고도 9760 m에 도달하는 세계 기록을 세웠지만 독일은 패전국이었고 FAI (국제항공연맹)는 이를 등재

하지 않았다. 6월 28일 디머의 비행 이후 11일 만에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었으며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독일은 1920년

중반까지 항공기 및 엔진 생산이 금지되었다. 

 

때문에 BMW는 기차용 공압 브레이크 정도나 겨우 계약을 따내면서 만들게 되었다. 한편 BFW는 오토바이 제작을

시작했는데 BFW의 첫 오토바이는 1920년에 한 프란트(Hanfland) 제143cc 2 행정 엔진을 탑재한 Flink라는 오토바이

였다. 이 오토바이는 오토바이라기보다는 엔진 달린 자전거에 가까웠다.

 

재밌게도 같은 시기에 BMW 역시 오토바이 제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당시 공장감독관이자 1914년 빈-뮌헨

레이스에 참가해 3위를 차지한 이력이 있던 스톨이 포프에게 오토바이 엔진개발을 설득한 것이 시작이었다.

마틴 스톨은 이 더글러스 500 cc가 레이스에서 보여준 신뢰성에 감탄했었고 포프에게 유사한 엔진 생산의 승인을

설득했다고 한다. 허가가 떨어지자 마틴 스톨은 1914년식 수평대향 2 기통 더글러스 500 cc 오토바이를 가져와

해체했고 복제품 제작에 불만이 많았던 막스 프리츠는 마지못해 부품들을 측정해 카피한 엔진에 나름이 개량을 가했는데,

이렇게 BMW M2 B15 엔진이 탄생했다. 2는 2 기통, B는 박서를 의미하며 형태 자체는 더글러스의 실린더를 앞뒤로

배치한 형태와 똑같다.

 

기타

이 오토바이용 엔진은 이후 여러 회사의 오토바이에 탑재되었다. 마틴스톨이 뉘른베르크의 빅토리아 바이크를 찾아가

이 엔진을 빅토리아 바이크에 실어달라고 설득해 탄생한 빅토리아 KR1이 유명하다. 이 엔진이 탑재된 오토바이 중엔 

파산위기에 빠진 BFW가 빅토리아와 경쟁하기 위해 1921년 말에 판매했던 Helios도 있었다. 마틴 스톨은 정작 1922년

에 회사를 떠났는데 BMW가 여행경비로 100 마르크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후에 빅토리아에서 KR라는 

오버헤드밸브를 장착한, 당시 독일에서 가장 잘 나가던 스포츠 오토바이를 제작했는데 BMW의 R32를 포함한 그 어떤

오토바이보다도 우월한 성능을 보여줬었다.

 

이 프리츠의 좌우배치형 수평대향 엔진 설계는 1922년 12월에 도면이 그려졌는데, 좀 더 이른 시기인 1919년 영국의

솝워드 ABC 모터사이클에도 같은 형태의 좌우 배치형 엔진이 탑재되어 있었다. 솝위드 ABC는 BMW가 자신들의

오토바이를 그대로 카피했다고 비난했지만 솝위드 ABC의 오토바이는 파이널 드라이브가 샤프트 체인구동방식 어었고

카뷰레터등의 핵심 설계에서 프리츠의 박서와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입증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거기에 더해 당시 

막스 프리츠는 솝위드 ABC제 오토바이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