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그룹 산하의 독일 자동차 제조사로, 스포츠카, 슈퍼카와 더불어 세단, SUV등을 생산한다.
포르쉐 911이 간판 모델이자 상징적인 모델이지만, 2000년대 들어 포르쉐 911보다 포르쉐포르셰 카이엔,
포르쉐 파나메라 가 더 잘 팔린다.
엠블럼
엠블럼 디자인은 말 사육으로 유명한 뷔르템베르크의 문장을 빌려 왔다고 한다. 초창기 로고는 폭스바겐의 VW 로고를
디자인한 Franz Xaver Reimspie가 맡았으며, 1952년 356의 스티어링 휠에 최초로 들어간 것을 시초로, 이후에는 보닛
과 휠캡에도 적용된다.
페라리를 참고했다는 루머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애초에 포르쉐가 페파리보다 8년이나 먼저 창립되었다. 그리고 도약
하는 말 모양의 상징은 유럽에서 오래전부터 여기저기서 흔히 사용되던 상징이었다.
첫 번째 자동차인 356이 나온 지 75주년을 맞는 해인 2023년 6월 1일 새로운 실물 로고를 선공개했다. 동년 6월 8일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트에서 개최되는 75주년 기념 행사에서 정식 공개한 다음, 동년 11월 공개되는 3세대
파나메라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된다. 변화는 크지 않지만 STUTTGART 부분은 음각을 새기지 않고 검은 형태로 바뀠으며,
표면을 브러쉬 처리하고 빨간색 문양에 벌집 패턴을 넣었다. 70년 넘게 이어진 로고인 만큼 정교하게 다듬고 반복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3년의 시간이 소요됐다고 밝혔다.
특징
스포츠 카의 대명사 같은 브랜드이며, 일반적인 차들은 시간이 흐르면 폐차장으로 가지만 포르셰는 박물관으로 간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계의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또한 "데일리 카처럼 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에 폭스바겐 아우디와의 기술 협업도 많이 하기 때문에 디젤 엔진이라던지 카이엔이나 파나메라 같은 새로운 모델
개발도 가능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슈퍼카를 대량생산하는 업체이며, 또한 순수익을 따졌을 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자동차 회사이기도 하다. 덕분에 그 재력을 바탕으로 페라리나 람보르기니가 다른 양산차 업체에 먹혀 빌빌거리 때
다른 양산차 업체를 잡아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고, 결국에는 그렇게 되었다. 고정밀 기계 생산으로 인한 고품질 달성과
JIT시스템 도입을 통한 생산 단가 감소로 슈퍼카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생산 및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911터보 S와 GT2 RS, GT3 RS 같은 라인업들은 성능면에서는 당연히 슈퍼카의 범주에 들어가야 하지만,
다른 브랜드의 슈퍼카 오너들이 포르쉐을 슈퍼카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도 있다. 이들의 주장은 성능도 성능이지만
감성적인 부분을 포르쉐가 채워주지 못하며 특히 희소성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포르셰는 카이맨, 파나메라, 그리고
마칸까지 등장함으로써 길거리에서 자동차 마니아가 아닌 대중들에게 포르쉐 마크 혹은 개구리 디자인이 너무 자주
노출되어 슈퍼카 브랜드 같지않고 슈퍼카를 구매함으로써 모두의 동경이 될 수 있다는 감성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특히나 과시성이 강한 소비제인 람보르기니나 페라리와 같은 고가의 차량을 소유한 오너들에게 포르셰가
평가절하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디자인에 있어서는 디자인 콘셉트를 911을 기본 베이스로 하며, 911 디자이너들은 죄다 똑같이개구리 같은 스포츠카만
하루 종일 그리다 퇴근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전통을 고수한다. 하지만 이는 자조적인 농담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이덴티티가 명확한 차량을 가지고 정해진 틀에서도 매번 다른 느낌의 새로운 모델을 멋지게 내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고밖에 볼 수 없다. NEW 911인 992도 디자인의 틀 자체는 같아 보이지만, 992를 보다가 이전 991,997을
보면 확실히 구형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큰 차이를 낸다.
역사
포르셰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페르디난트 포르셰"가 자동차 설계 사무소를 설립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1931년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에 설립한 회사입니다. 같은 시기 히틀러는 독일의 경제 부흥을 위해 당시 돈 990 제국 마르크 가격으로
4명의 승객이 탑승가능한 국민차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는데요. 히틀러는 이 국민차 프로젝트를 페르디난트
포르셰에게 지시하였고 이때 Volks(국민) + (합성어) + wagen (차)라는 뜻의 국민차, 폭스바겐 비틀 이 출시되었고
훗날, 이 비틀은 전 세계에서 오랜 기간 사랑받는 자동차가 됩니다.
1939년 히틀러는 세계 2차 대전을 일으키게 됩니다. 히틀러는 전쟁을 위해 앞서 국민차 개발로 친분을 두텁게 쌓던
페르디난트 포르셰와 그의 아들 페리 포르셰에게 군용차 개발을 명령합니다. 그리고 군용차와 탱크를 디자인하고 납품
을 하게 되는데요. 이 때문에 결국 종전 후 포르셰는 나치에게 협조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생활을 하게 됩니다.
수감기간 동안 그의 아들이었던 페리 포르쉐 혼자 폭스바겐 프로젝트의 공장의 경영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1949년 페르디난트 포르셰는 출소하게 되는데, 2년 뒤인 1951년 포르쉐의 설립자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지병으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 아버지의 사망 이후, 페리 포르셰는 폭스바겐 프로젝트가 아닌 본격적인 독립 자동차 개발에 뛰어들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포르셰의 시초입니다.
1949년 페르디난트 포르셰가 사망하기 전, "내가 꿈꾸던 차를 찾을 수 없어서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말을 남긴
페리 포르셰는 최대한 가볍고 엔진은 강력한 차를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페리 포르쉐의 생각을 담은
포르쉐의 역사 그 시작인 포르쉐 최초의 자동차 "포르셰 356"이 출시됩니다.
포르셰 356은 초대 비틀을 기반으로 제작되어 초기에는 356 No.1 로드스터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는데요. 356은
페리 포르셰의 뜻에 맞게 585kg으로 가볍고 5개의 4 기통엔진을 탑재해 최대속도 135km/h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포르셰 356은 1951년 프랑스 르망에서 열린 클래스에서 우승하게 되면서 명성을 더더욱 높이 사게 됩니다.
초기모델 356을 이어 356A, 356B, 356C 등의 모델이 연달아 출시되며 포르셰는 유명 브랜드로 가는 발판을 마련
하게 됩니다.
기술력
포르셰의 기술력은 외계인을 고문해 개발했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을 지니고 있다.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Mixte를 1899년에 만들기도 했으며 냉전이 한참일 때 최초의 수랭식 가솔린엔진을
만들기까지 했을 정도다.
스포츠카 범주안에서 유일하게 RR구동을 고집해서 쓰는 브랜드다. 대표 모델이 911 전 모델이 엔진이 차축의 뒤쪽에
위치하며 2륜 구동 카레라 시리즈는 기본이고 서킷주행 능력이 극대화된 GT3, GT3 RS, 그리고 GT2 RS가 RR타입
을 쓴다. 터보 모델을 제외한 다른 911 모델들은 숫자 4가 모델 이름에 들어가지 않으면 후륜구동이다. 엔진이 차 뒤에
있어서 무게 중심이 뒤쪽에 있다 보니 가속력과 제동이 매우 뛰어난 편, 하지만 오버스티어 현상이 강해서 993 이전
공랭식 모델의 경우 숙련된 운전자가 아니면 운전하기 어려운 차라는 인식이 매우 강했으나, 993부터는 리어
서스펜션이 대폭적인 구조변경으로 데뷔 당시 각종 매체 평가에서 후륜구동인 카레라 S 조차도 마치 964 시절의
4륜구동 모델과도 같은 주행안정성을 갖추어 냈다는 평을 듣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지금 출시되는 911 카레라들은
이런 인식이 많이 없어졌다.
하이퍼카 및 레이스카 기술도 탁월하다. 이는 918 스파이더나, 991.2 GT2 RS와, 현행 992 터보 시리즈들의 서킷
랩보드타임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당장 뉘르부르크링 비양산차 최단 랩타임 기록+비 하이브리드 양산차
랩타임 1등을 포르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정비성, 차량 유지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여타
슈퍼카 브랜드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고 내구성도 독일 삼사 급으로 뛰어나다. 이 정도면 실용주의의
끝판왕이다.